살다 보면 기분 나쁜 일을 마주치게 된다. 항상 기분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나를 향한 모욕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피곤하다. 물론 강력하게 대처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반응으로 인해 다툼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철학은 모욕 대처법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철학은 한 마디로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지식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적용되기에 철학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은 모욕에 대해 어떻게 처방을 내릴까?
목차
스토아 철학의 모욕 대처법
철학 중에서도 스토아 철학의 모욕 대처법을 알아보자. 스토아 철학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철학이 알려주는 모욕 대처법은 비슷하다.
사실인지 생각해 보라.
스토아 철학은 누가 나에게 모욕을 준다면 그에 반응하기보다 먼저 그 모욕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한다. 만약 나를 향한 모욕이 사실이라면 내가 분노하거나 반응할 필요가 없다. 맞는 말을 한 것인데 내가 왜 화를 내야 할 것인가?
상대의 말이 맞다면 그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어째서 자명한 사실을 모욕이라 생각한다는 말인가?
유머로 대처하라.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다짜고짜 소크라테스의 뺨을 후려갈긴 적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영문도 모르고 얻어맞은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가 이내 화를 낼 것이고 주먹으로 응징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달랐다. 유머를 활용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상황을 유머로 넘겼다. "앞으로 외출할 때는 투구를 쓰고 다녀야겠군."하고 말한 것이다. 또 한 번은 제자들과 함께 집에 갔는데 그의 아내 크산티페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제자들이 보는 데서 그에게 물을 쏟아부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자 그는 제자들에게 "천둥이 치면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지."하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모욕에 대해 유머로 대처하라고 조언한다. 모욕을 주는 데 웃어넘긴다면 오히려 모욕을 준 사람이 모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야말로 통쾌하게 받아치는 것이다.
무시하라.
그러나 가장 높은 모욕 대처법은 무시라고 한다. 상대의 모욕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아니 아예 그런 일 자체를 없는 듯 대한다면 상대는 당황하게 될 것이다. 무시야 말로 가장 강력한 복수라고 한다.
모욕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상대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욕을 준 상대는 더욱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무시는 상대의 존재를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유머보다도 무시가 상대를 더 화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상황에 따라 반응하라.
그렇다고 모든 모욕에 대해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부하 직원이 지속적으로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는데 이것을 유머나 무시로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상대가 잘못된 행동을 고착화하게 된다면 곤란하다. 그럴 때는 처벌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데 그걸 넘어가기만 한다면 아이의 미래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부하직원의 상관에 대한 불손한 태도를 유머로만 넘기려 한다면 부하직원은 더 큰 일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적절한 처벌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모욕을 받는 사람의 자세다. 상대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세라고 한다.
요는 모욕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감정이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처벌이 온당한 것이지, 지배당하는 상태에서의 처벌은 그저 복수일 뿐이다. 스토아 철학은 바로 그런 점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모욕을 받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가? 유머나 무시로 혹은 처벌로 맞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방응이 감정적이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상대의 모욕에 진 것이다.
같은 행동을 해도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은 행동이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그만큼 인격이 성숙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고 사색이 필요하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문제의 본질로 우리를 안내한다.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크네 교만의 대가 (0) | 2022.11.04 |
---|---|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0) | 2022.11.03 |
친절한 무례 (0) | 2022.11.03 |
손흥민 얼굴 부상(급) 토트넘 한국 축구 비상 (0) | 2022.11.02 |
마스크 시대의 종말 (1) | 2022.09.23 |
댓글